외계교감: 미래를 기억하게 됐다
<컨택트> 혹은 <네 인생의 이야기>

엔지니어 출신 변호사의 ‘SF대작 읽기’

※이 글을 쓴 최기욱 변호사는 SF 열혈팬이다. 우주시대의 씨앗을 일찌감치 뿌려온 SF대작들을 영상 리메이크 작품과 비교해 소개함으로써 우주문화의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이 코너를 마련했다. 이 글은 코스모스 타임즈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다. <편집자>

 

 

 

침대머리에서 딸에게 같은 동화를 매일 읽어주는 엄마. 하루는 스토리를 마음대로 바꿔 읽었더니 딸이 바로 알아내고 똑바로 읽으라고 한다. 딸에게 묻는다. 너는 결말을 다 알고 있으면서 왜 또 읽으라고 하는거니? 왜 그럴까? 이 간단한 질문이 인간에 대한 무척이나 심오한 질문일 수 있다는 화두를 던진 작품 이야기를 해보련다.   

 

<네 인생의 이야기(원제 Story of Your Life)>는 현존하는 최고의 SF단편 소설가로 꼽히는 테드 창의 걸작이다. 드니 빌뇌브 감독에 의해 <컨택트(영어제목 Arrival)>라는 익숙한 제목으로 영화화돼 일반인들에게도 유명해졌다.

 

테드 창은 1990년 ‘바빌론의 탑’으로 데뷔한 이후 줄곧 중단편만을 써왔으면서도 작품 하나하나가 ‘못해도 수작’이라는 평을 받으며 온갖 SF문학상을 휩쓰는 저력을 보여주는,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작가이다. 그의 유일한 단점은 본업이 있기도 하고(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작품 하나에 엄청난 공을 들이기에 발표한 작품 수가 극히 적다는 것이다. 오늘도 SF팬들은 하염없이 그의 신작을 기다리고 있다.

 

언어학자 루이즈 뱅크스는 외계인의 언어를 배우며 신기한 능력을 갖게 된다. 

 

태어나지 않은 딸에게 들려주는 딸의 인생 이야기

 

단편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수록된 <네 인생의 이야기>는 언어학자인 주인공 루이즈 뱅크스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신의 딸에게 딸의 인생 이야기를 담담히 들려주는 형식의 작품이다. 딸의 탄생과 죽음까지를. 그렇기에 ‘네’ 인생의 이야기이다. 참고로 단편집의 원제는 <Story of Your Life and Others> 즉 '네 인생의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들'이지만 국내판 제목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로 조금 더 포근한 인상을 주도록 바뀌었다.

 

딸한테 딸의 삶 이야기를 들려준다니?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딸의 인생이야기라니? 이것이 이 작품의 기발한 상상력이 빛나는 지점이다.

 

지구 궤도 상에 우주선들이 느닷없이 출현했고, 지상에 체경(looking glass)이라 불리는 외계인의 인공물이 나타났다. 미국 전역에 아홉 개, 전세계에 백열두 개. 이 ‘디스플레이’를 통해 지구인들은 그들과 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들은 7개의 다리 위에 통이 얹힌 모습을 하고 있었기에 ‘헵타포드’로 불렸다.

 

주인공 언어학자 루이즈는 이들의 언어를 탐구하다가 이들의 언어에는 ‘어순’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럴 수 있다. 언어의 발전에 있어 어떠한 필연적 모습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언어를 살펴보니 그들은 첫 획을 긋기 전부터 이미 어떤 모습으로 문장이 끝날지를 알고 있어야만 했다. 그 말은, 그들은 미래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동시적으로 인식하는 헵타포드의 언어를 습득함으로써 루이즈도 ‘미래를 기억’하는 능력을 갖게되었고 그렇게 딸에게 딸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그녀의 탄생부터 죽음에 이르는 이야기를. 아니, 죽음과 탄생, 그리고 그 밖의 이야기들을.    

 

경이롭다. 작가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사고방식과 세상을 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아이디어인 ‘사피어-워프 가설(The Sapir-Whorf hypothesis)’과 ‘페르마의 최소 시간 원리’를 결합하여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어냈다.

 

페르마의 최소 시간 원리는 간단하다. 빛은 두 점 사이를 이동할 때 시간을 최소화하는 경로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는 물리적 거리가 가장 짧음을 의미하지 않으며, 빛이 통과하는 매질과 굴절률을 고려한 가장 빠른 경로를 의미한다. 물 속에 부분적으로 잠긴 막대는 휘어보인다. 이는 빛이 물에서 공기로 빠져나올 때 굴절되기 때문이며, 시간을 최소로 필요로 하는 경로를 따르기 때문이다.

 

이를 우리는 어떻게 배우는가? 굴절률의 차이 ‘때문에’ 빛이 방향을 바꿨다고 배운다. 이것이 인류의 관점이다. 원인과 결과로,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사건의 연쇄로 세상을 인식한다. 하지만 빛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을 최소화했다고 설명을 한다면? 이것은 헵타포드의 관점의 세계관이 된다. “빛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선택하기 전, 자신의 최종 목적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헵타포드는 모든 시간을 동시에 경험하고, 하나의 목적을 지각한다. 최소화 혹은 최대화라는 하나의 목적을. 같은 세계에 대한 두 가지 인식 방법이 이렇게 다르다. 인과적, 목적론적.

 

외계언어는 이상한 원과 굵기로 표현되었다. 그 세계로 들어가면 미래를 알 수 있게 된다. 

 

미래를 보는 헵타포드, 외계언어를 깨우치는 언어학자

 

그래서 헵타포드는 미래를 본다. 그리고 루이즈도 마찬가지로 미래를 보게 되었다. 작가는 여기서 한가지 생각거리를 더 얹어준다. 남편은 떠나가고 딸은 비극적 사고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날 미래를 알게된다. 그럼에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아니,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 인류를 수천년간 괴롭혀온 난제이다. 미래를 아는 것과 자유의지가 양립할 수 있는 것인가?

 

작가는 자유를 인과적 세계관에 연결지음으로써 이 난제를 해결한다. 즉 자유 혹은 강제는 인과적 맥락에서만 현실적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다. 반면 헵타포드적, 즉 동시적 의식의 맥락에서는 자유나 강제는 의미가 없다. 미래를 아는 것과 자유의지는 양립할 수 없지만, “헵타포드들은 자유롭지 않지만 속박당한 것도 아니다”. 동등하게 타당한 것들을 두고 어떤 것이 ‘올바른’ 것인지 따지려드는, 자유의지가 존재해야만 인간의 존재 의미가 있다는 듯 여기는 우리의 편협한 시각이 만들어낸 착시일 뿐인 것이다.

 

그렇게 미래를 알게된 루이즈 박사는 곧 죽게될 것임을 알면서도 딸의 탄생을 받아들이게 된다(“이 움직임에 특별히 강요받은 듯한 느낌은 없지. 오히려 네 머리 위로 떨어지려는 볼을 잡으려고 달려갈 때 같은 절박한 느낌에 가까워. 본능적으로 주저 없이 따라야 하는 느낌.”).

 

극 중에서 루이즈는 딸에게 장난으로 동화를 엉뚱하게 각색해서 읽어준다. 딸은 원래의 이야기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원래대로 읽으라고 성화를 낸다.  

 “벌써 무슨 얘긴지 알고 있는데 왜 나더러 읽어달라는 거야?”

 “얘기를 듣고 싶으니까!”

이런 느낌을 살려 ‘딸’에게 말하는 부분에 있어 시제가 없는 듯이, 마치 시간 관념에서 완전히 벗어난 초월적인 존재인 관찰자가 세상을 바라보는 듯이 서술되고, 어머니의 따뜻한 슬픔이 녹아있는 이야기가 합쳐져 가슴시리게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창조된다. 

 

드니 빌뇌브는 이 작품을 아주 세련되면서도 멋지게 영상으로 그려내었다. 전체 이야기의 진행은 묵묵하게 끌고나가면서도 시종일관 작은 사건들을 조근조근 터뜨려가며 관객들에게 긴장감을 놓을 틈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음악 혹은 음향효과의 적절한 사용 또한 인상적인 장면들을 강조하고 긴장의 고조와 유지에 일조한다.

 

물론 나타나서는 그저 가만히 있는 외계물체라는 소재 덕분에 당연히 '시카리오' 같은 빌뇌브의 다른 작품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할 틈 없이 꾸준히 사건을 벌이고 해결해 나가는 진행, 적절한 각 사건들의 시간 분배, 완벽하게 분위기를 조절하는 음향 등은 드니 빌뇌브의 탁월한 역량을 입증하고 있다. 

 

물리학자와 언어학자들이 외계언어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노력한다. 

 

원작=언어학+물리학 vs 영화=언어학+음악

 

영화는 원작과 유사하지만 드라마적 재미를 위해 내용이 어느 정도 각색됐다. 우주선이 궤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상에 직접 내려와 있는 설정으로 시각적 충격을 극대화한 것이 대표적 각색이다. 영화에서는 세계 각국들 간의 정치적, 군사적 긴장이 드러나지만 원작에 없는 설정이다. 그리고 헵타포드가 지구에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 원작에서는 “관찰하기 위해”라는 말 외에는 특별히 밝히는 바가 없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그들이 3000년 후에 인류로부터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 인류를 돕는 것이라는 대목이 나온다(드니 빌뇌브는 인류가 3000년이나 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주었다!).

 

딸의 죽음이 원작에서는 충분히 예방 가능한 방식이었지만 영화에서는 예방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타나 원작보다 조금 더 운명론적 시각을 강조한다. 단, 죽음에 대해서는 운명론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루이즈의 선택의 관점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곧 죽을 딸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헵타포드적 시각이 강조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영화의 멋진 영상에서는 헵타포드의 문자가 단순한 원형에서 가지가 뻗어나온 것과 같은 모양으로 그려지지만 원작 속에서는 조금 더 복잡한 모습을 하고 있다(“해독하려는 의도가 없으면 초서체로 그린 기상천외한 사마귀들의 집합처럼 보였다.“).

 

원작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페르마의 최소 시간 원리’. 헵타포드의 세계관에 대한 이해와 직결되는 핵심적인 부분이지만 영화에서는 통째로 도려내어지고 언어적 관점에서만 설명된다. 때문에 언어학자와 물리학자 듀오가 주요 등장인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감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 물리학자는 들러리만 서게 되었다. 영화의 쉬운 이해를 위해 삭제된 설정으로 보이지만, 그 덕분에 이 영화는 일부 블로거들에게 ‘문과판 인터스텔라’라는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테드 창의 작품은 과학의 이론적 기반에 철학의 깊이를 더한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 우리, 그리고 생명에 대한 철학. 지금은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온 인간의 원초적 질문에 대한 고찰들이다. 이미 수천년간 수없이 많은 이들이 행한 질문들이지만 테드 창은 놀라운 상상력으로 이 오래된 이야기에 새로움을 더해냈다.

 

루이즈의 선택은 이루어졌다. 처음부터 알고있던 목적지에 상응하는 경로다. 방향은 정해졌다. 그녀가 선택한 길에 환희가 있을 것인가 고통이 있을 것인가? 그것만이 우연과 필연 사이에서 첨벙거리는 인간이 던질 수 있는 질문일 것이다.

 

 

최기욱 변호사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플랜트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엔지니어 및 리스크매니저로 근무했다. 이후 변호사가 되어 문과와 이과, 이론과 실무를 넘나드는 배경을 바탕으로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기업의 사내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작가, 강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비바! 로스쿨>(박영사. 2022), <엘리트문과를 위한 과학상식>(박영사. 2022), <잘 나가는 이공계 직장인들을 위한 법률계약 상식>(박영사. 2023)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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