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지니어링과 인간의지의 승리
<마션>에 우주법 개념이?

엔지니어 출신 변호사의 ‘SF대작 읽기’

※이 글을 쓴 최기욱 변호사는 SF 열혈팬이다. 우주시대의 씨앗을 일찌감치 뿌려온 SF대작들을 영상 리메이크 작품과 비교해 소개함으로써 우주문화의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이 코너를 마련했다. 이 글은 코스모스 타임즈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다. <편집자>

 

 

독자여러분들은 어떤 유형의 작품을 좋아하는가? 광활한 대자연 앞에서 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가를 다룬 작품, 아니면 대자연을 이겨내는 인간의 의지와 지식에 대한 찬가? 필자는 후자이다. ‘이렇게 위대한 인류’의 일원이라는 자부심과 지식으로 인류를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 정신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들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과거의 내가 엔지니어라는 직업을 선택했던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나와 같이 생각하는 이들을 위해 작가 앤디 위어는 위기를 극복하는 인간의 위대한 모습을 그려냈다. 맷 데이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저 유명한 영화 <마션>의 원작이다. 

 

식물학자이자 기계공학자 마크 와트니는 미국 항공우주국 NASA의 탐사대원이다. 그는 언제나 과학과 공학 지식에 기초한 빠른 판단과 실행력을 자랑하는 억척스러운 캐릭터다. 화성에서 모래폭풍을 만난 탐사대는 마크를 남겨두고 지구로 귀환하게된다. 모두가 그는 죽었다고 생각했고 NASA에선 장례까지 치러준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모래폭풍에서 살아남은 마크, 이제 화성에서 생존해야 하는 더 큰 시련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살길이 막막했다. 다음 탐사대가 올 때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식량 문제가 가장 걱정이다. 하지만 우리의 식물학자 마크, 식량이었던 감자를 재배하기로 한다. 어느 곳에 식물을 기르기 시작하면, 그곳을 점령한 것이 된다. 탐사기지 내에 비닐 하우스를 만들고,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직접 물을 만들고 화성의 흙을 퍼와 땅을 만들고, 동료들과 자신의 배변으로 거름을 만들었다!

 

식물학과 공학의 지식을 이용해 먹을 것을 해결하는 마크 와트니. 이하 사진은 리들리 스콧 감독 <마션>의 장면들이다.  

 

‘생존’의 문제 풀어낸 공학-물리학

 

먹는 문제는 해결되었다. 이제 다음 탐사대가 올 때까지 버틸 수는 있게 됐다. 하지만 다음 탐사대가 도달할 곳은 수천km는 떨어진 곳. 탐사용 차량은 이동거리가 수십 km 정도로 턱도 없다. 배터리를 두 개 써봐도 안된다. 기적의 남자 마크는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까?

 

혼자 차량을 타고 왔다갔다 하는 마크를 NASA에서 눈치를 챘다. 그가 살아있음을 알게된 것. 지구는 뒤집어졌다. 죽은 줄 알고 장례까지 치른 직원인데 살아있네?! 하지만 대책이 없다. 일단은 지켜본다.

 

마크는 막막해졌다. 다음 탐사대가 올 때까지 버틸 수는 있겠지만 그곳까지 갈 수가 없다. 지구에 직접 교신하여 도움을 요청하는 수밖에. 그리고 우리의 아이디어 뱅크 마크는 화성에 묻혀있는 화성 탐사선 패스파인더 호를 찾아내 지구와 교신까지 성공한다. 이제 지구의 모든 천재들이 모여 그의 무사 귀환 프로젝트를 펼친다.

 

이 작품은 엄청난 위트와 현실의 기술적 한계 내에서의 정확한 과학적 서술로 큰 인기를 끌었다. 아직 구현되지 않은 미래의 기술에 대한 상상이 아닌 현실의 기술에 바탕을 두었고, 이 때문에 일반적인 SF 작품과는 결을 달리한다.

 

감자재배를 위한 식물학, 산소와 물 생성을 위한 화학, 거주지 보수 및 로버 개조 등을 위한 공학, 궤도 조정을 위한 물리학, 이온엔진 등 수많은 인류의 지혜들이 등장하여 독자를 즐겁게 한다. 드라마틱한 효과를 위해 작품 초반의 화성 폭풍의 강도를 일부러 과장한 것(화성의 얇은 대기는 그러한 강한 바람을 지탱할 수 없다. 일단 주인공을 어쩔 수 없이 고립시켜야 됐으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설정이다!) 외에는 모두 정확한 실제 과학 원리에 의한 것이다.

 

어렵다고 넘길 내용이 아니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 이렇게 많은 지식들이 필요하다는 것은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주위에 산재하는 수없이 많은 과학, 공학지식들을 놓치고 무지의 베일에 싸인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자. 항상 “왜?”라는 의문을 갖고 탐구하는 자세를 가져보자. 엔지니어링은 과학적 지식을 활용하여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이라 정의된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 시작은 과학적 지식 기반을 쌓는 것이다. 그 뒤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굳건한 의지와 긍정적인 사고에 달렸다.

 

과학의 힘 뿐 아니라 동료들의 우정, 인간애가 마크를 살리는 힘이 됐다.  

 

과학적 지식과 긍정적 사고의 힘

 

과학기술적 지식만이 와트니의 생존을 지지한 것이 아니었다. 마션을 가장 독창적이면서 아름다운 SF 작품으로 만든 것은 다름 아닌 가슴 따뜻해지는 인류애 덕분이다. SF작품들의 대부분은 절망적이기 그지없는 상황을 다룬다. 아! 우주란 얼마나 가혹한 곳인가. 그러한 절망적이기 그지없는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어두운 측면’을 그려낸 작품들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사실적 묘사’라 인정받으며 걸작으로 칭송받곤 한다.

 

하지만 인간이 정말 그러한가. 그렇지 않다. 물론 인성이 맨틀 아래 있는 인간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착한 천성을 가졌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인플루엔셜. 2021)'에서 잘 논증됐듯이, 사람은 고상하고 친절한 동물이며, 이에 반하는 사회통념을 만들어온 문학, 사회과학의 고전들은 실제와 다른 허구이거나 과학적 근거가 매우 빈약한 잘못된 실험을 통한 것이었음이 밝혀졌다.

 

수많은 이해관계, 지리한 법적 절차, 관료주의, 자신의 관심사가 아닌 것에 있어서는 비용부터 따지고드는 무뢰한 등 수많은 관문이 있었지만 인류는 그 모든 것을 가볍게 이겨냈다. 어려움에 처한 와트니를 돕겠다는 일념 하나로.

 

“나를 살리기 위해 들어간 비용은 수십억 달러에 달할 것이다. 괴상한 식물학자 한 명을 구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을 쏟아 붓다니. 대체 왜 그랬을까?”

 

많은 이들이 하나되어 그의 생환을 위해 모든 인적, 물적, 정치적 자원을 아낌없이 쏟아붓고 항명까지 서슴지 않는(“우주여행은 위험한 겁니다. 무엇이 가장 안전한가 하는 논의가 되어선 안 됩니다.”) 감동적인 <마션>의 장면들은 독자들의 가슴을 촉촉하게 울린다. 이것이 <마션> 세계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꽤나 멋진 동물이니까. 실제로도.

 

리들리 스콧 감독은 가혹한 우주의 세계를 극대화한 SF작품으로 유명하지만 적어도 <마션>에서는 원작의 웃음기 넘치는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원작보다 웃음 수위가 조금 낮아졌긴 하지만(12세 이상 관람가를 맞추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만큼 와트니의 고생도 조금 덜어내었다. 대표적으로 원작에서는 로버의 개조를 위해 사용하던 드릴에서 흘러나온 전기로 인해 통신을 위해 사용하던 패스파인더가 죽어버려 후반부의 작업들은 온전히 와트니 혼자서 이겨내야 했다. 스키아파렐리 분지의 구덩이에서 로버의 전복사고를 겪기까지 하는데도 말이다!

 

또 다른 원작과의 차이로 원작의 로버는 에어로크가 달려 간이텐트와 연결이 가능한데, 영화에 등장한 로버는 별도 에어로크가 없다(로버의 선실 자체가 에어로크 역할을 한다). 덕분에 간이텐트를 이용한 농사, 개조작업 등의 장면이 삭제되었다.

 

공해 같은 우주에 있는 미국의 우주선을 마음대로 건드리면, 해적행위가 될 수 있다.

 

‘우주해적’이 된 와트니, 법적 근거는?

 

<마션>에는 법조인의 입장에서 아주 재미있는 장면도 나온다. 와트니는 자신이 '우주해적'이라는 주장을 한다! 영화에서도 잠시 언급이 되는 장면이다. 책에서는 온갖 공학적 지식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해놓고 이와 같은 법적 주장에 대해서는 두루뭉실하게 한 문단으로 넘어갔다. 아쉬운대로 필자가 나름 이 주장을 해석해보았다. 와트니의 ‘우주해적설’은 두 가지 법적 근거에 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1967년 유엔에서 채택된 ‘우주 조약(Outer Space Treaty, 일명 OST)’이다. 정식명칭은 ‘달과 기타 천체를 포함한 외기권의 탐색과 이용에 있어서의 국가 활동을 규율하는 원칙에 관한 조약(Treaty on principles governing the activities of States in the exploration and use of outer space, including the moon and other celestial bodies)’이다.

 

이 조약의 제2조는 다음과 같다. “달과 기타 천체를 포함한 외기권은 주권의 주장에 의하여 또는 이용과 점유에 의하여 또는 기타 모든 수단에 의한 국가 전용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 즉, 어떤 나라도 우주나 그 어떤 천체도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우주는 전 인류의 공유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유엔 해양법 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일명 UNCLOS)’이다. 제87조는 공해의 자유(Freedom of the high seas)를 규정하고 있다. “공해는 연안국이거나 내륙국이거나 관계없이 모든 국가에 개방된다.”, 그리고 제89조는 우주조약과 비슷하게 “어떠한 국가라도 유효하게 공해의 어느 부분을 자국의 주권아래 둘 수 없다.”라 규정한다.

 

이제 이 둘을 조합하여 와트니의 주장을 완성해보자.

1) OST는 화성에 대한 어떤 국가의 주권 주장도 금지하고 있다. 즉, 와트니는 현재 어떤 국가의 영토 내에 있지 않다.

2) 어떤 국가의 주권도 미치지 않는 곳에 있는 사람에 적용될만한 법이 있는가? 있다. 해양법은 공해, 즉 어떤 국가도 관할하지 않는 국제 해역에서의 자유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즉 와트니는 어떠한 국가의 관할권에 있지 않으므로 해양법의 적용을 받는다.

3) 그러므로 화성에서 미국 소유의 우주선을 마음대로 건드린 자신은 우주해적이다!

 

너무나도 재미있는 해석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우주법은 아직도 계속 발전중이며 OST도, UNCLOS도 우주에 해양법이 적용된다고 명시하고 있진 않기에 현실적으로 이는 ‘독창적 해석’이라 볼 수 있다. 앤디 위어의 박학다식함에 놀랄 수 밖에 없는 지점이다. 참고로 대한민국은 OST와 UNCLOS 모두 비준하여 이 둘은 대한민국에서도 법적 효력을 가진다.

 

우주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인류에게 이 작품을 권한다. 지식이 바탕이 된 빛나는 아이디어, 생존하겠다는 인간의 의지로 빚어낸 기적의 이야기다. 

 

 

 

 

최기욱 변호사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플랜트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엔지니어 및 리스크매니저로 근무했다. 이후 변호사가 되어 문과와 이과, 이론과 실무를 넘나드는 배경을 바탕으로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기업의 사내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작가, 강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비바! 로스쿨>(박영사. 2022), <엘리트문과를 위한 과학상식>(박영사. 2022), <잘 나가는 이공계 직장인들을 위한 법률계약 상식>(박영사. 2023)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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