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진짜 인간인가?"
'블레이드 러너'가 묻는다!

엔지니어 출신 변호사의 'SF대작 읽기'= 필립 K. 딕 <안드로이드는...>

※이 글을 쓴 최기욱 변호사는 SF 열혈팬이다. 우주시대의 씨앗을 일찌감치 뿌려온 SF대작들을 영상 리메이크 작품과 비교해 소개함으로써 우주문화의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이 코너를 마련했다. 이 글은 코스모스 타임즈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다. <편집자>


지구가 황폐해져 화성을 개발하고 우주로 떠나는 인류의 꿈을 다룬 SF 작품들은 많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모든 인류가 우주 식민지의 혜택을 누릴 수 있을 리는 없다. 아직 시험 중인 스페이스X의 대형 우주선 스타십도 100명밖에 타지 못한다. 100대가 함께 화성에 가도 1만명뿐이다. 황폐해진 지구에 남겨진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그러면 남아있는 지구의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우주개발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있는 현재, 다행히 우리 지구는 아직 황폐화되지 않았다. 이 상태가 계속되도록 희망하며, 남은 지구인들의 운명을 점쳐보는 작품을 즐겨보자. 우리는 항상 최선을 희망하되 최악을 대비해야 하니까. 리들리 스콧 감독의 '저주받은 걸작'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인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이다.

 

 

핵전쟁, 생명이 간신히 살아가는 지구

 

멀지않은 미래, 핵전쟁 때문에 지구는 방사능 낙진으로 뒤덮여 생물이 살아남기 어려운 환경이 된다. 인류는 우주로 떠나기 시작했고 가혹한 환경의 우주개발을 위해 인간형 로봇인 안드로이드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주인을 죽이고 지구로 탈출하는 안드로이드들이 생긴다. 노예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해.

 

지구에는 이런 안드로이드를 ‘퇴역’시키는 경찰 소속 현상금사냥꾼이 존재하고 주인공 릭 데커드도 그들 중 하나이다. 어느 날, 8명의 최신형 넥서스-6 안드로이드들이 지구로 불법도주하게 되고 데커드의 선배 현상금사냥꾼이 이들을 쫓다 큰 부상을 당해버리게 된다. 아직 6명이 남은 상태에서 데커드에게 배정된 사건. 데커드는 이들을 쫓기 시작한다. 현상금을 받아 자신이 키우는 가짜 전기양을 대체할 진짜 동물을 사고자 하는 꿈을 위해. 

 

이 작품은 필립 K. 딕의 많은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가장 심도있게 다뤘다. 생물이 살아남기 어려워진 척박한 환경, 사람과 똑같이 생긴 안드로이드, 그리고 먹고살기 위해 그들의 생명을 빼앗아야만 하는 이들. 이 모든 것들이 인간의 '인간성' 혹은 '인간성의 부재'를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들이다. 

 

탈출한 안드로이드를 쫓는 현상금사냥꾼은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진짜 인간인가? 이하의 사진들은 imdb.com의 스틸사진이다.  

 

안드로이드와 인간을 구별짓는 '감정이입'

 

필립 K. 딕이 생각한 인간을 안드로이드와 구별짓게 하는 특징은 '감정이입'이다. ‘보이트 캠프 감정이입 검사’라는 장치도 등장한다. 현상금사냥꾼들은 이 검사를 사용하여 인간과 안드로이드를 구별한다. 이 검사는 언어적 방법으로 도덕적인 충격을 유발, 자의적인 조절이 불가능한 얼굴 영역의 모세관 팽창과 눈 근육 내부에서 일어나는 긴장으로 인한 동요를 기록한다.

 

인간의 물리적, 생물학적 특성으로 인간과 비인간을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우리가 ‘인간다움’이라 부르는 ‘감정이입’을 통해 인간을 구별해낸다는 점이 이 작품의 특이성이다. 즉 생물학적 답이 있는 ‘인간 그 자체’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한 문제를 추상적인 ‘인간성’의 문제로 확장한 것이다.

 

이 작품을 영화로만 접한 이들은 ‘정밀한 생물학적 검사를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굳이 이러한 시간이 오래 걸리고 정량적이지 않은, 사람의 주관에 따라 검사가 오염될 수 있는 방식을 사용하는 것인가?’ 라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원작에는 이에 대한 답이 나와 있다.

 

”법적으로 따지자면, 어느 누구도 저에게 강제로 골수 검사를 시킬 수는 없어요. 이미 법원에서 판결이 난 거니까요. ‘자기부죄 강요 금지의 원칙’이라는 거죠.”

 

데커드의 검사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는 안드로이드 레이철의 대사이다. 내게 있어 법조인으로서 상당히 흥미로웠던 지점이다.

 

 

'자기부죄 금지' 나는 나를 부정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여기서 '자기부죄(self incrimination)'는 피의자 또는 피고인이 자신의 범죄에 대한 형벌을 받게될 수 있는 진술이나 증거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형사법의 대원칙인 ‘자기부죄 금지원칙’으로 이러한 자기부죄는 금지된다.

 

우리 법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헌법 제12조 제2항은 ‘모든 국민은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형법상 증거인멸죄, 범인도피죄의 경우 자기의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하지 않는다. 또한 형사소송법 제148조는 자기부죄거부특권을 보장하기 위해 자기가 유죄판결을 받을 사실이 드러날 염려가 있는 증언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고, 그와 같은 증언거부권 보장을 위하여 형사소송법 제160조는 재판장이 신문 전에 증언거부권을 고지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보이트 캠프 검사가 굉장히 흥미로운 요소이긴 하지만, 일부 동물들도 우리가 감정이라 부르는, 상황에 대한 반응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들을 생각하면, 보이트 캠프 검사가 측정하는 것은 ‘인간만의 특징’으로서의 감정반응이라기보다는 ‘인생 경험이 부족한’ 안드로이드가 학습하지 못한 상황에 대한 느리거나 인위적인 반응을 잡아내는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작중 안드로이드 수명은 배터리 문제로 인해 4년의 한계를 가진다). 결국 완벽하기 어려운 구별방법이라는 것이다.

 

작중에서도 해당 검사로는 정신질환자에 대해서는 안드로이드와 구별을 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극의 주인공인 현상금사냥꾼들도 적어도 ‘안드로이드에 대한 감정’ 측면에서 감정이입에 문제가 있음이 언급된다. 극중 데커드는 안드로이드의 특징으로, 다른 안드로이드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 말을 들은 한 안드로이드는 대꾸한다. “그러면 당신이야말로 안드로이드겠네요.”

 

원작에는 보이트 캠프 검사보다 본격적으로 인간의 감정이입을 드러내는 매개로 ‘머서교’와 ‘애완동물’이 등장한다. 아쉽게도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는 모두 등장하지 않는다.

 

인간은 틈만 나면 머서교의 감정이입 장치를 이용한다. VR 장치의 최종 진화버전이라 할 수 있는 감정이입 장치의 손잡이를 잡으면 박해자들의 돌을 맞으며 언덕을 힘겹게 오르는 선지자 머서의 모습을, 그의 물리적, 정신적 고통을 함께 공유하게된다. 그로써 하나됨을, 인간으로서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다른 인간에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고통을 감수하고서라도 이를 적극적으로 원하는 인간의 성정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는 장치라 할 수 있다(참고로 이 머서교와 감정이입 상자에 흥미가 생기신 독자분들은 국내의 경우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에 수록된 그의 단편 '작고 검은 상자'에서 머서교의 등장과 박해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주인공 릭 데커드는 안드로이드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초반에는 이러한 머서교와 감정이입 장치에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안드로이드와 교감을 하고 이들에 대한 감정이 싹튼 후반부에서는 머서의 현현을 보고, 자신이 머서가 되어 돌을 맞는 실제의 환상을 경험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진짜 살아있는 애완동물을 기르고 싶다, 로봇 말고...

 

그리고 인간들은 애완동물을 기른다. 그리고 살아있는 진짜 동물을 기르기를 열망한다. 대부분의 생물이 멸종한 현재, 살아있는 생물을 기르는 것은 하나의 사치가 되었고, 살아있는 동물을 키울 부를 갖지 못한 이들은 가짜 동물이라도 길러야 하는 처지가 된다. 이들에게 자신이 기르는 동물이 가짜 전기 동물이라는 사실을 이웃에게 들키는 것은 크나큰 치욕이다. 이는 과시와 소유욕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살아있는 생물과의 교감을 원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벌어진 상태라 보아야 할 것이다.

 

“동물을 기르지 않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시잖아요. 다들 그런 행동은 부도덕하고 반감정이입적이라고 생각하죠.”

 

작중 데커드는 '가짜' 전기양을 기르고 있다. 진짜 동물을 갖겠다는 데커드의 열망은 그의 힘겨운 현상금사냥꾼의 삶을 지탱해주는 가장 큰 원동력이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안드로이드는 이같은 인간의 특성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다. 안드로이드들은 인간들이 종교와 감정이입에 대해 보이는 열정은 인간의 본능적 차원에서의 갈망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인간들에게 그들이 감정이입 장치의 손잡이를 잡았을 때 보게되는 머서의 환영이 모두 연기이자 만들어진 화면이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 머서교와 감정이입에 대한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말 것이라 생각하며. 하지만 믿고, 느끼고, 공감하고 싶어하는 인간들에게 그러한 ‘사실’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러한 폭로 이후에서야 주인공 데커드는 머서의 환영을 보는 종교적 체험을 하게 된다.

 

 

지능은 인간성의 특질이 아니다?

 

또한 안드로이드들은 극의 또다른 주인공인 ‘특수인’ 이지도어가 어렵게 발견한 살아있는 거미를 장난감처럼 다루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저 다리 4개 만으로도 살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지적 호기심의 충족을 위해서. 이 모습을 보고 안드로이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이지도어는 무너진다. 그들은 우리와는 너무 다른 존재라는 사실에.

 

방사능의 영향으로 신체적, 정신적 오점이 생기게 된 특수인(극 중에서 ‘닭대가리’라 불리는)의 존재는 인간성에 대한 또다른 통찰을 제공한다. 이 역시 영화에서는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다. 계몽주의 시대 이후 우리는 인간의 이성을 신성시하는 지적 토대 위에 살아오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흔히들 인간의 특징으로 높은 지적능력을 내세운다. 하지만 필립 K. 딕은 지능은 인간성의 요소를 구성하지 않는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감정이입이란 오로지 인간 공동체 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분명한 반면, 지능은 어느 정도까지는 모든 문과 목에서(심지어 거미류도 포함해서) 발견되었다. 어쩌면 감정이입 능력이 손상되지 않은 집단 본능을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적능력이 낮은 특수인들을 등장시킴으로써 그는 이 지점을 더욱 확실하게 부각시킨다. 지적인 존재라는 특징이 인간의 구성요소라 한다면 현실세계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그리 지적이지 못한 인간들은 무엇이 된단 말인가? 특수인인 이지도어는 자신의 아파트에 방문한 안드로이드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차별의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니, 심지어 동경한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가장 지능이 낮은 인간이, 인간들 사이에서 멸시를 받는 인간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는 아이러니다.

 

이러한 안드로이드의 비인간성을 강조하는 원작의 장치들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모두 삭제되었고, 오히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동료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보여주는 모습, 인간 데커드에게 자비를 베푸는 모습과 같은 안드로이드들의 인간성을 강조하는 장면들이 삽입됐다. 즉 리들리 스콧은 분명히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차이를 의도적으로 원작보다 훨씬 축소시켰고, 이 때문에 원작의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이 상당수 무뎌져버렸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간적인 안드로이드를 퇴역시키는 인간의 애환

 

하지만 이러한 설정 덕분에 이들을 ‘퇴역’시키는 인간 데커드의 비인간성과 애환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 분명히 인간과 다르지만 적어도 겉보기엔 너무나도 인간다운 안드로이드. 어쩔 수 없이 이들을 ‘퇴역’시켜야 하는 상황의 주인공 데커드의 고뇌는 우리 도덕성의 근원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는 가장 비인간적인 일을 하는 인간이었다.

 

모든 지구의 생명체의 몸과 정신은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지구환경에 적응한 결과이고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전의 환경에서의 적응을 위해 형성된 도덕성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황폐화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하는 처지가 된다. 세상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고 과학의 발전으로 그 주기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우리는 언제나 과도기에 살고 있다. 과거의 산물인 도덕성을 부여잡고 현재의 환경에 맞는 새로운 인간성을 확립하고 적응해나가야할 과도기 인류의 딜레마는 데커드만의 것이 아니다.

 

“나는 천벌이야. 가뭄이나 흑사병처럼. 내가 가는 곳에는 고대의 저주가 뒤따르지. 머서의 말마따나. 나는 잘못을 행할 수 밖에 없는 거야. 내가 하는 일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들이었어.”

 

그리고 젊은 해리슨 포드는 비에 젖은 멍한 표정과 눈빛만으로 이 모든 고뇌를 영상에 담아냈다.

 

책의 마지막 장면, 길고 긴 하루를 마치고 데커드는 아내에게 말한다. “이제 끝난 거지, 안그래?” 그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내가 교감할 수 있는 다른 존재가 내 옆에 있음을 확인하는, 그로써 우리는 인간이라는 확인이었다. 아내에게 대답을 듣고나서야 비로소 평화로이 잠들 수 있었다. 어쩌면 옳은 일보단 잘못된 것을 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실세계의 우리들 모두에게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인간이라는 확신을 갖게하는,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SF 걸작들인 원작과 영화를 추천한다.  

 


최기욱 변호사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플랜트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엔지니어 및 리스크매니저로 근무했다. 이후 변호사가 되어 문과와 이과, 이론과 실무를 넘나드는 배경을 바탕으로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기업의 사내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작가, 강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비바! 로스쿨>(박영사. 2022), <엘리트문과를 위한 과학상식>(박영사. 2022), <잘 나가는 이공계 직장인들을 위한 법률계약 상식>(박영사. 2023)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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