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 웰스 vs 2005 스필버그
지구를 지키는 생명체의 힘!

엔지니어 출신 변호사의 'SF대작 읽기'= H G 웰스 '우주전쟁'

※이 글을 쓴 최기욱 변호사는 SF 열혈팬이다. 우주시대의 씨앗을 일찌감치 뿌려온 SF대작들을 영상 리메이크 작품과 비교해 소개함으로써 우주문화의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이 코너를 마련했다. 이 글은 코스모스 타임즈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다. <편집자>


 

2024년 7월, NASA의 퍼서비어런스 로버가 화성의 암석에서 수십억년 전 고대 미생물의 흔적을 발견했다(https://www.cosmostimes.net/news/article.html?no=24392). SF팬들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화성의 외계생명체에 대한 한 작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주 무시무시한.

 

이전 칼럼  <안드로메다 스트레인>에서는 우주에서 온 세균이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살펴보았다. 좋지 않은 쪽으로. 하지만 모든 세균이 우리에게 나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수없이 많은 세균 중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병원성 세균은 극히 일부이기도 하고, 심지어 우리 몸에는 인체를 구성하는 세포보다 많은 세균이 살고있다! 우리와 함께 진화해온 ‘지구동기’들인 셈이다. 서로 같이 잘 살아남는게 우리의 공동 목표다. 그러면 우리의 좋지않은 편견과는 다르게 이 작은 동료인 세균들은 외부 세계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외계인의 침략’ 장르의 시조격인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 H. G. Wells)의 <우주전쟁(The War of the Worlds)>은 바로 이러한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다.

 

 

우주공간 저 너머에서 지구를 노리는 냉혹한 자들이 온다

 

“우리처럼 영혼을 지녔으되 야수처럼 궁핍하고, 지능은 높되 냉혹하며, 동정심이라곤 조금도 없는 그들은, 우주 공간 저 너머에서 질투 어린 시선으로 지구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우리를 향한 계획을 진행시켰다.”

 

1894년, 화성의 충(태양의 반대편에 위치한 시기. 관측하기 가장 좋은 시기이다) 시기에 화성 표면에서 엄청난 섬광이 관측되었다. 분광기로 스펙트럼 분석을 한 결과, 주성분이 수소인 거대한 덩어리가 지구로 빠르게 이동 중이었다. 그리고 직경 30m의 원통형 물체가 영국에 떨어진다. 거기서 나온 화성인들은 죽음의 열광선으로 사람들을 무차별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 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무섭기는 해도 우리가 해치울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화성인들은 훨씬 강한 우리의 중력을 버티지 못할거라는 희망적인 의견이 나돌았다.

 

“모리셔스 섬에 살던 도도새들도 자신의 둥지에 군림하면서, 자신들을 잡으러 온 무자비한 선원들에 대해 의논했을지 모른다. '내일이면 저들을 죽도록 쪼아서 쫒아내 버릴 수 있어, 여보'라고.”

 

하지만 다리가 세 개 달린 거대한 전투기계(트라이포드)와 독가스가 등장하고 그들의 압도적인 파괴력에 인류는 희망을 잃었다. 학자였던 주인공 ‘나’(작품은 천문학자 또는 철학자로 유추되는 ‘나’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가 된다)는 화성인의 첫 공습을 목격한 사람 중 하나로, 피난 과정 중에 아내와 헤어지게 되는 바람에 아내가 머무르는 곳까지 가기 위한 길고 험난한 여정에 오르게 된다.  

 

1898년도의 작품이기에 지금 우주시대의 인류가 읽기에는 조금 어색한 부분들이 있지만 그 통찰과 상상은 오히려 큰 놀라움을 준다. 단순히 상상의 나래를 펼친 것이 아니라 당시까지 알려진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과학적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 ‘논리적으로 그럴싸한’ 설정을 이끌어냈는데, 이러한 치밀함이 이 고전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어준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화성은 지구보다 빠르게 식었기 때문에 더 빨리 생명이 탄생하기 적당한 온도가 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그래서 그들이 더 빨리 나타나 더 빨리 고등생명체로 진화하였다’는 설정을 이끌어낸 것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책 중반부에 화성인과 그들의 기계장비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상당히 길게 이어지는데 100년도 더 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웰스의 폭넓은 지식기반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지구로 몰려온 외계인의 공격은 100년전 열강의 식민지 전쟁을 풍자하는 성격도 있다. / imdb.com

 

100년전 불었던 '화성인' 열풍... 열강 침략전쟁의 풍자

 

사실 화성에 화성인이 존재한다는 설정도 당시로서는 나름 최신의 과학에서 근거한 것이기도 하다. 뜬금없지만 조선과도 인연이 있어 그 유명한 <조선 : 조용한 아침의 나라(Choson : the Land of Morning Calm)>를 출간하기도 했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이 화성에 인공적인 운하가 있고, 그것을 만든 화성인이 존재한다고 주장한 <화성>이라는 책을 발간하여, 전세계적으로 (잘못된) 화성인 열풍이 불었던 것이 1895년이었기 때문. 

 

이 기념비적인 작품은 유럽열강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였던 침략전쟁들에 대한 풍자로 많이 알려져있다. 그리고 실제로 벌어졌던 미생물로 인한 대참사까지. 

 

“화성인들을 잔악한 종족이라고 판단 내리기 전에, 우리는 사라진 아메리카 들소나 도도새와 같은 동물뿐 아니라 같은 인간이지만 지능이 낮은 종족에게 우리가 가했던 잔악하고 무자비한 폭력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영국이 거꾸로 외계로부터의 공격에 맥을 못추고 쓰러지는 이야기는 당시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놀랍게도 원작은 전세계가 침공당한 것이 아니라 영국만 당한 것이라는 설정이다!).

 

하지만 우주시대를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이 작품이 다가온다. 우리가 <우주전쟁> 속의 화성인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이 작품은 더이상 풍자가 아닌 실질적 교훈을 주는 예언서가 된다. 절대로 그 세계의 미물을 무시하지 말 것. 위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다는 것.

 

스필버그의 영화에는 원작에 대한 존경심과 현대과학을 반영해야 하는 필연성이 공존한다. / imdb.com

 

스필버그의 영화 <우주전쟁>: 오마주와 현대화

 

이 역사적인 작품은 두 차례 영화화되었다. 각각 50년 간격을 두고 1953년, 2005년에. 원작은 19세기 말 영국을 배경으로 과학적 상상력을 통해 외계 생명체의 침공을 다루었고, 1953년 영화는 20세기 중반 미국의 관점을 반영하여 보다 로맨틱한 요소와 당시의 냉전 시대적 긴장을 담아냈다. 2005년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는 현대 미국 사회와 평범한 인물의 시각에서 침공을 묘사하며, 첨단 특수 효과를 통해 원작의 공포와 긴장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그 중 수작으로 평가받는 스필버그 감독, 톰 크루즈 주연의 2005년 작품과 원작을 비교해보자(사실 1953년 작품에는 트라이포드조차 등장하지 않기에 비교가 적절하지 않다).  

 

트라이포드의 외형과 사람을 넣고 다니는 바구니, 사이렌같은 거대한 소리로 소통하는 트라이포드들, ‘새’들이 트라이포드 주위를 날아다니는 모습으로 외계인들이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장면, 강에서 떠내려오는 충격적인 시체들, 함께 지내게 되는 정신나간 사람 등 많은 장면들이 원작을 오마주했다. 하지만 주인공을 학자에서 자녀가 딸린 평범한 노동자로 바꾸고, 가족내의 갈등을 크게 추가하는 등 큰 각색을 거쳤다. 무엇보다 원작과 영화 비교의 하이라이트는 화성인과 트라이포드의 모습에 대한 것일 것이다.

 

원작에서의 트라이포드는 ‘당시의 기술력 하에서의 상상’의 산물이다보니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기에(‘대포’ 몇 방으로 격추 당하기도 한다), 스필버그는 원작의 모양새와 기능은 살리면서도 훨씬 세련된 트라이포드를 창조해냈다. 현대의 무기에 의해 몰살 당할 수밖에 없는 깡통이었던 원작의 트라이포드를 강화하여 방어막으로 모든 무기가 무력화된다는 설정을 추가했다. 그리고 원작에서는 죽마처럼 뻣뻣한 세 개의 다리를 상당히 어색하게 움직여 이동하는 것처럼 묘사되는데(“소 젖 짤 때 사용하는 의자가 약간 기울어진 채 땅 위를 거침없이 달려오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 영화에서는 훨씬 자연스럽고 고차원적인 움직임을 가진 살상기계로 등장한다. 

 

트라이포드가 전면에 등장하는 과정도 매우 다르고, 열광선은 원작에서는 들고다니는 금속 상자를 통해 발사되지만, 영화에서는 트라이포드 자체에서 발사되어 임팩트를 더한다. 다만 원작 화성인들의 주무기 중 하나였던 독가스는 영상으로 보여주기 힘든 탓인지 영화에서는 생략되었다. 그 덕분에 혼란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이 자아내는 인간지옥 장면들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소설 속 문어같은 화성인과 달리 영화속 외계인은 인간과 벌레의 결합 형태를 띄고 출신행성은 밝혀져있지 않다. / imdb.com

 

문어형 화성인 vs 인간+벌레형 외계인

 

가장 큰 변주로 보이는 것은 외계인의 모습. 원작의 외계인은 거대한 머리에 큰 눈, 그리고 열여섯 개의 촉수 같은 사지. 고도의 지능을 제외하고 필요없는 기관은 모두 퇴화해버린 문어 같은 모습의 외계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심지어 희생양의 피를 뽑아 곧바로 주입하여 영양을 섭취하는 식으로 진화하였기에 대부분의 소화기관조차 퇴화했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우리가 음식을 조리해먹게 되면서 소화기관의 기능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약해졌다는 사실과 잘 들어맞는 설정이다.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인간진화의 과정을 극한까지 몰아붙여 새로운 화성인을 창조해낸 것이다(즉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자신들의 영양섭취를 위해 사람의 피를 뽑는 것이었던 것. 그런 이유에서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화성인들의 우주선에서는 화성인들의 도시락 역할을 하는 희생생물도 발견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스필버그의 영화에서는 트리케라톱스같은 넓찍한 두개골, 긴 세 개의 다리를 가진 인간형 외계인과 벌레형 외계인의 절충안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외계인의 출신지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화성탐사가 시작된 마당에 화성인이라는 원작의 설정을 유지할 수 없었던 터라 당연한 것이지만...  

 

이런저런 모습의 외계인들과 인간의 전쟁이 끝이 나면, 확인되는 것은 인간과 지상의 모든 생명들의 가치다. 미생물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지상의 풍요로움을 만들어온 모든 생명들. 영화의 시작과 끝에서 나레이션을 통해 읽어주는 대목들은 모두 원작에 있는 문장을 차용한 것이다. 특히 지구에서 살아온 모든 생명에 대한 감탄과 헌사가 듬뿍 담겨있는 마지막 나레이션은 지금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인류는 수많은 죽음과 고통을 겪으면서 지구에서 살 수 있는 생존권을 갖게 되었고, 침입자를 막을 권리를 획득했다. 화성인의 힘이 열 배나 강하다고 해도 지구는 우리 인류의 것이었다. 어떤 인간도 헛되이 살거나 죽지 않았다.”


최기욱 변호사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플랜트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엔지니어 및 리스크매니저로 근무했다. 이후 변호사가 되어 문과와 이과, 이론과 실무를 넘나드는 배경을 바탕으로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기업의 사내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작가, 강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비바! 로스쿨>(박영사. 2022), <엘리트문과를 위한 과학상식>(박영사. 2022), <잘 나가는 이공계 직장인들을 위한 법률계약 상식>(박영사. 2023), <법무취업길라잡이>(박영사, 2024), <웃게 하소서>(바른북스, 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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