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전략, 강렬한 전투!
인류를 구원한 '엔더의 전쟁'

엔지니어 출신 변호사의 'SF대작 읽기'= 오손 스콧 카드 '엔더의 게임'

※이 글을 쓴 최기욱 변호사는 SF 열혈팬이다. 우주시대의 씨앗을 일찌감치 뿌려온 SF대작들을 영상 리메이크 작품과 비교해 소개함으로써 우주문화의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이 코너를 마련했다. 이 글은 코스모스 타임즈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다. <편집자>


 

외계종족의 침략을 그린 SF 작품은 많다. 외계의 존재에 대한 우리의 무의식적 공포감을 자극하기 좋은 소재이기 때문일터. 이런 작품들에서 인류는 나약하기 그지없다. 비록 마지막 결정적 전투에 승리해 적을 물러나게 만들긴 하지만, 대체로 이런 작품에 등장하는 인류는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한다. 만물의 영장 자존심이 말이 아니다. 그러면 인간이 적극적으로 공격을 수행하여 적을 소탕하는, 우리 위대한 인류의 자존심을 회복할만한 작품은 없는가?

 

그럴리 없다. 심지어 SF작품의 최고 영예로 불리는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모두 석권하고, 수십년간 SF 베스트셀러 자리를 놓치지 않고 전세계적으로 100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며, 중고등학교 추천도서는 물론 대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될 정도의 영향력을 미친 위대한 작품이 있다. 오손 스콧 카드의 <엔더의 게임(Ender’s Game)>이다.

 

 

곤충형 외계인에 맞서 인류 구하는 천재소년 '엔더' 이야기

 

1985년 발표된 장편 <엔더의 게임>은 인류가 '포믹'이라는 곤충형 외계 종족(극 중에서는 멸칭으로 '버거bugger'라고 불리는)으로부터의 실존적 위협에 직면한 미래를 바탕으로, 인류 군대의 총지휘자가 되는 천재 소년 앤드류 '엔더' 위긴의 이야기다.

 

과거에도 포믹은 지구를 침공했었다. 위대한 래컴 소령의 활약으로 인류는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또 다른 공격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포믹은 여왕을 중심으로 하나의 개체처럼 사고하고 움직이기 때문에 각자가 그때그때 재빠르게 판단해 움직인다. 이에 비해 언어라는 상당히 부정확하고 불편한 매체 덕분에 의사소통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성인 인간 파일럿들로는 대처가 어려웠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함대 IF는 빠른 순발력과 사고력을 지닌 어린 천재 아이들을 훈련시켜 인류 함대의 지휘관으로 삼기위해 전투 학교에서 엘리트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엔더는 위긴 집안의 셋째로 태어났다. 세 명은 모두가 천재성을 지녔다. 하지만 과도한 폭력성을 지닌 형 피터, 공감능력이 너무 뛰어난 누나 발렌타인은 지휘관감으로는 부적절했다. 셋째 엔더는 지능은 물론, 필요할 때는 폭력을 사용할 줄 아는 결단력, 그리고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여 전략적 사고가 가능한 인물이었고 IF는 이런 그를 주목한다.

 

“우리는 그 아이를 역사상 최고의 사령관으로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어깨에 세계의 운명을 짊어지우겠지. 차라리 그 애가 우리가 찾는 인물이 아니었으면 좋겠군. 진심일세.”

 

전투학교로 간 엔더는 그의 천재성 덕분에 빠르게 성장한다. 그래프 대령을 비롯한 어른들은 그를 독립적이고 강력한 지도자로 만들기 위해 고의적으로 동료들과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고립시킨다. 심지어 그를 역경에 빠뜨리기 위해 전투 게임의 룰을 무작위로 변경하기까지 한다. 그 와중에도 엔더는 무중력 전투 게임에서 뛰어난 리더십과 창의적 사고를 보여주며 최고의 능력을 발휘,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을 증명한다.

 

결국 전투 학교를 조기졸업하고 지휘관 학교로 가게된 엔더. 그는 전설적인 지휘관 래컴 소령의 지도 하에 일련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소대 단위의 단순한 전투게임이 아닌 대규모 함대를 지휘, 차례차례 승리를 이끌어가며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을 다져간다. 과연 그는 인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지휘관 학교와 이 불운한 전쟁에 숨겨진 치명적인 비밀은 무엇인가. 

 

래컴 대령의 지도 아래 전쟁을 이끌며 승리를 쌓아가는 엔더. 영화 <엔더스 게임>의 한 장면. / imdb.com

 

천재소년의 참전... '국제법'으로 따져보면?

이 작품은 리더십, 전술, 전쟁의 도덕성에 대한 심도있는 탐구로 유명하다. 천재적 군사전략가로서의 엔더의 훈련과 그의 심리적 갈등은 독자들에게 전쟁의 윤리, 특히 어린이들을 전쟁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당연히 현실 세계에서 이러한 소년병 징집은 국제법상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유엔 아동 권리 협약(CRC)' 제38조는 체약국들이 15세에 달하지 아니한 자가 적대행위에 직접 참여하지 아니할 것을 보장하기 위하여 실행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여야 하며, 15세에 달하지 아니한 자의 징병을 삼가야 한다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CRC와 관련, '아동의 무력충돌 참여에 관한 아동권리협약 선택의정서'는 18세 미만인 자가 자국 군대의 구성원으로서 적대행위에 직접 참여하지 아니하도록 보장하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네바 협약 추가의정서에도 같은 취지의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아울러 국제형사재판소(ICC)의 로마 규정(Rome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은 15세 미만의 아동을 군대에 징집 또는 모병하거나 그들을 적대행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이용하는 행위를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있기에 그래프 대령은 로마 규정에 따라 전쟁 범죄로 기소될 수 있을 것이다(원작 후반부에는 실제로 그래프 대령이 군법 재판을 받는다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만 정확히 어떤 내용으로 기소된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없고, 엔더가 전투 학교에서 휘말린 싸움으로 인한 살인행위가 쟁점화되었다는 내용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엔더의 게임>은 단순한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구도를 넘어서 전쟁의 복잡성을 강조한다. 외계종족 포믹은 우리를 먼저 침략했다. 그렇다고 전쟁이 끝난 후 그 종족을 싸그리 말살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이러한 쟁점은 엔더의 어린 시절의 싸움 장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엔더는 절대로 먼저 싸움을 걸지 않는다. 하지만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상대방을 재기불능 상태로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엔더의 성격과 전략은 그를 인류의 최고 지휘관으로 발탁되게 만들고, 결국 인류의 결정적 승리를 가져온다. 철저한 상대 종족의 말살을 통해.

 

“그를 쓰러뜨려서 첫 싸움은 이겼습니다. 하지만 저는 철저하게 이겨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그 애들이 저를 내버려둘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최고로 만든 행위로 인해 윤리적 고뇌의 수렁에 빠지게 되는, 이것이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이 되는 아이러니다. 공감능력이 뛰어났던 엔더는 자신이 한 종족을 몰살해버렸다는 죄책감에 큰 충격을 받지만, 정작 그 행위에 대해서는 죄를 묻는 어른들이 없다는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는다.

 

‘나는 100억 명의 버거들과 그들의 여왕들을 죽였다. 그들 역시 살아 있었고 인간만큼 영리했으며, 무엇보다도 우리를 침공하려 하지도 않았는데… 그걸 범죄라고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 밀리터리SF 장르에서 흔하지 않은 이같은 반성은 향후 다른 작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작은 전투보다 거대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지휘자의 재능을 보이는 엔더. 

 

재미있고 뛰어난 전쟁 심리학... 미 해병 추천도서가 된 이유 뚜렷

 

그렇다고 이 작품이 무겁고 철학적인 것만은 아니다. 역사적 베스트셀러인만큼 무척이나 즐길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전투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 땅의 모든 군필자들의 뒷골을 서늘하게 만들며, 무중력 상황 하에서의 전투, 상대의 허를 찌르고 게임의 규칙을 뒤트는 전략, 함대를 이끌어나가는 전투 시뮬레이션의 묘사는 왜 이 작품이 미국 해병대 추천도서로 선정됐는지 단번에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지휘와 전쟁의 심리적 측면과 군사 윤리와 리더십에 대한 논의를 하기에 이 작품보다 뛰어난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과학적이고 디테일한 부분의 장점도 많다. 광속보다 빠른 통신을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기계 '앤서블', 우주공간 속 중력을 활용하기 위한 토러스 형태의 전투학교 우주선의 모습, 엔더가 수업과 여가시간에 활용하는 오늘날의 '전자패드'에 해당하는 '책상'의 모습 등 다채로운 기술이 등장하여 SF팬들을 즐겁게 한다. 또 밀리터리SF의 걸작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 하인라인의 <스타쉽 트루퍼스>와의 유사점을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유사점은 <엔더의 게임> 최대 반전과 연관되어 있어 밝힐 수는 없지만, 모든 다툼은 대화의 부재에서 비롯된다는 인생의 교훈 정도는 언급해도 될 것이다.

 

“결국 이 전쟁은 서로 대화를 하지 못해 일어난 것이로군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면, 그가 널 해치지 않을 거라고는 확신할 수 없겠지.”

 

해리슨 포드가 그래프 대령 역할을, 개빈 후드가 감독을 맡은 영화 <엔더스 게임>은 2013년에야 나왔다. 

 

명배우들이 출연한 2013년 영화, 원작의 통찰력은 포기?

 

이 작품은 2013년이 되어서야 개빈 후드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엔더스 게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수작 <휴고>의 주인공 꼬마로 등장했던 에이사 버터필드가 주인공 엔더 역을 맡았고, 해리슨 포드가 그래프 대령 역을, (역시 <휴고>에도 출연한 바 있는) 벤 킹슬리가 래컴 소령 역을 열연했다. 하지만 영화 자체는 SF팬들에게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

 

원작에서는 전투학교 장면 외에 엔더의 형, 누나인 피터와 발렌타인이 지구에서 벌이는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비중이 상당히 크다. 각각 '로크'와 '데모스테네스'라는 필명을 통해 네트워크 상에서 여론을 이끌며(원작이 1985년 작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놀라운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세계정세를 주무르는 모습과 이 둘이 엔더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장면들이 등장하는데 영화에서는 이 둘의 비중은 없다시피 하다. 냉전이 엔더의 세계 속 미래까지 지속될 것이라 가정한 원작에서 피터와 발렌타인을 통해 보여주는 국제정세에 대한 논의는 이 작품의 백미 중 하나라 할 수 있는데 굉장히 아쉬운 지점이다.

 

그리고 원작에서 엔더가 전투학교에 입학하는 나이는 고작 여섯 살이고 전투학교 안에서 성장해나가는 반면,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청소년으로 등장하여 모든 일이 1~2년 새에 벌어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두 시간짜리 영화에 맞게 시간의 흐름을 단순화한 것이지만 관객이 엔더의 심리와 성장과정을 받아들이기 상당히 어렵게 만든 악수로 보인다.

 

그 외에도 작품의 하이라이트인 전투게임, 엔더가 여가시간에 즐기며 그의 심리를 잘 드러내주는 컴퓨터 게임인 ‘마인드게임’의 여러 장면이 등장은 했지만 그 비중이나 의의가 상당히 축소되어 아쉬움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배우들의 열연과 빼어난 영상미로 (원작을 모른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임은 분명하다. 장대한 우주전함과 세련된 전투학교의 모습, 어린 아이들의 전투 훈련이 주는 왠지 모를 귀여움과 씁쓸함, 무중력 공간에서의 전투게임, 최후의 함대 전투 시뮬레이션에서 보여주는 모든 것을 압도하는 포믹과의 최후의 전쟁 장면은 SF 영화를 많이 즐겨온 관객들에게도 만족스런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만큼 신선하다.

 

<엔더의 게임>은 전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소개되지 않은 비운의 걸작이다. 흥미진진하고 깊은 철학적 논의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은 어떤 상황에 빠져있는 사람에게도 용기를, 그리고 희망을 준다는 것이다. 어떠한 시련도 불굴의 의지, 그리고 전략적 사고의 힘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삶은 우리가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해내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그리고 여섯 살짜리 소년 엔더가 보여주는 성숙함에는 다 큰 어른들의 가슴을 울리는 힘이 있다.

 


최기욱 변호사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플랜트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엔지니어 및 리스크매니저로 근무했다. 이후 변호사가 되어 문과와 이과, 이론과 실무를 넘나드는 배경을 바탕으로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기업의 사내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작가, 강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비바! 로스쿨>(박영사. 2022), <엘리트문과를 위한 과학상식>(박영사. 2022), <잘 나가는 이공계 직장인들을 위한 법률계약 상식>(박영사. 2023), <법무취업길라잡이>(박영사, 2024), <웃게 하소서>(바른북스, 202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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