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vs 자유의지
마이너리티 리포트 "나는 무죄다"

엔지니어 출신 변호사의 'SF대작' 읽기

※이 글을 쓴 최기욱 변호사는 SF 열혈팬이다. 우주시대의 씨앗을 일찌감치 뿌려온 SF대작들을 영상 리메이크 작품과 비교해 소개함으로써 우주문화의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이 코너를 마련했다. 이 글은 코스모스 타임즈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다. <편집자>


 

지난 칼럼에서 미래를 아는 것과 자유의지의 양립 가능성을 심도있게 다룬 명작 <네 인생의 이야기>(영화 <컨택트>)를 보았다. 조금 어려웠다. 이번 칼럼에서는 같은 주제를 다뤘지만, 조금 다르게 더 명확한 서술을 보여주는 작품을 읽어보자. 할리우드가 사랑하는 작가 필립 K. 딕의 단편 <마이너리티 리포트>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하고, 톰 크루즈가 출연한 동명 영화의 원작이다.

 

가까운 미래, '프리크라임'이라는 기관에서는 예지력을 지닌 돌연변이 셋의 도움을 받아 중범죄를 저지를 것이라 예언된 자들을 격리 수용소로 보내 범죄를 예방한다. 그 덕분에 중범죄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 어찌보면 완벽한 사회가 완성된다(“범죄 그 자체는 완벽하게 형이상학적인 개념이 되는 걸세”).

 

세명의 돌연변이가 미래를 보고 범죄자를 구별해낸다.

 

'셋'의 의견을 들어야 유죄가 결정된다

 

왜 셋인가? 하나인 경우 그 결과의 완전성을 담보하지 못한다. 하나의 결과를 감시하기 위해 두번째를 둔다면? 그 둘이 서로 다른 결과를 내놓는다면 연역적 방법을 통해 어느 쪽이 옳은지 추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세번째가 이 둘의 결과를 점검한다. 그리고 셋 중 둘이 동의한다면, 높은 확률로 결과를 담보할 수 있고 이것은 다수의견이 된다. 다수 보고는 출력되고 소수 보고는 반려된다.

 

프리크라임 관리국장 존 A. 앤더튼. 자신의 후임자로 오게된 위트워에게 프리크라임의 역사적 의의를 설명하고 기관 견학을 시켜주다가 암호화된 천공카드(필립 K. 딕이 이 부분에서 만큼은 미래를 덜 보고 온 것 같다)를 발견한다. 그가 다음주 안에 평생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는 캐플런이라는 사람을 죽일 예정이라는 카드를.

 

처음에는 누군가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자신을 모함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다른 시간의 흐름이 있을 뿐. 앤더튼은 우여곡절 끝에 ‘첫번째 보고를 읽고 마음을 바꿔 살인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다른 미래에 대한 소수 보고’, 즉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찾아내고 고뇌에 빠진다. 나는 억울하지만 시스템은 완벽하다는 딜레마에.

“만약 당신이 이 소수 보고를 진실로 받아들인다면 다수의 보고 역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에요.”

 

이 작품을 보고나면 ‘이런 제도가 과연 가능할 것인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를 수 밖에 없다. 이 사회에서는 법을 어긴 적 없는, 하지만 어기게 될 것이 분명한 개인을 잡아들인다.

 

이러한 막강한 권한을 가진 프리크라임이라는 기관이 어둠의 유혹에 빠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당연한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필립 K. 딕은 군 사령부에도 같은 보고가 그대로 출력되어 군대의 감시를 받는다는 설정으로 이를 예방했고, 영화에서는 이러한 설정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범죄예정자를 체포하러 가기 전 전문가와 법관의 허가를 받고, 범죄자와 피해자의 이름이 적혀 나오는 공이 특수하게 제작되어 위변조가 불가능하다는 설정이 등장한다.

 

범죄의지가 전혀 없는데, 나더러 범인이라면 수용 가능할까?

 

미래 예측 vs 죄형법정주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 자체에 대한 불신이 피어오른다. 예언을 바탕으로 사람을 구속한다는 점에서 이 시스템은 예언이 틀리지 않는다는 것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프리크라임 요원들이 범죄를 미리 막으면 예언은 틀린 것이 아닌가? 영화에서 이를 기가막히게 표현한 장면이 있다(원작에는 없는 장면이다).

 

프리크라임 시스템을 의심많은 위트워에게 설명해주던 앤더튼. 느닷없이 테이블 위에서 공을 굴린다. 위트워 쪽으로. 위트워는 떨어지기 직전에 공을 잡았다. 앤더튼이 묻는다.

“공을 왜 잡았소?”

“떨어질 테니까”

“확실합니까? 안떨어졌잖습니까. 잡았으니까. 하지만 떨어질 것은 분명했죠.”

 

그럼 예언은 정확하고 그 사람은 법을 어기게 될 것이 분명하다고 치자. 다음 질문은 그래서 그 사람을 잡아가두어도 되냐는 것이다. 당연히 안된다. 적어도 현재의 형법체계에서는 어떠한 행위가 범죄로 처벌되기 위해서는 법에 미리 처벌대상으로 규정이 되어있어야 하고(죄형법정주의), 당연히 미래의 범죄를 처벌하는 법은 없기에 현실화되지 않은 범죄를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살인 등 일부 범죄에 대해 ‘예비·음모’를 처벌하긴 하지만 적어도 범죄준비행위는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형법을 최대한 엄격히 만들고 해석하며, 무죄추정의 원칙을 신성시하는 이유는 결국 완전하지 않은 인간의 한계 때문 아닌가. 인간은 실체적 진실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백 명의 죄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자를 처벌해서는 안된다는 측면이 강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한계를 벗어난 예지가 가능하다면 이 전제는 완전히 바뀌게 될 것이다. 예지된 죄인은 반드시 죄를 저지른다. 그렇다면 이 시스템을 반박하기 어려워진다.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문제는 우리가 당사자가 되었을 때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이다. 아무런 범죄의도조차 없던 ‘내가’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 예견되었을 때, 나에 대한 구속에 납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된다. 논리가 아니라 납득의 문제다. 너무나도 인간적인.

 

프리크라임의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그것의 정확성과 사회적 가치를 맹신하고 있던 앤더튼조차 자신의 안위가 위협에 처하자 이 시스템의 문제를 깨닫고 견해를 바꾼다. “만약 무고한 사람들을 감금해야 존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그런 시스템은 파괴되어야 마땅한 거요.” (이는 앤더튼이 자신에 대한 예언이 잘못나온 것이라 오해를 하고 있는 상황의 대사라는 점을 첨언한다.)

 

그리고 이 주제는 이제 그저 탁상공론의 대상으로 넘길 이야기가 아니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압도적인 CCTV 수와 안면인식을 비롯한 AI기술을 바탕으로 ‘시티브레인’ 시스템을 운영한지 오래이고, 우리나라에서도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범죄위험도 예측·분석 시스템(Pre-CAS)’이 이미 도입되어 운영 중이다. 다만 이 경우 작품과 달리 ‘예지’가 아닌 ‘데이터’를 기반으로, 즉 실제로 어느 정도 이루어진 행위를 포착하여 대응하는 것이므로 예비·음모죄를 적용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고, 오히려 개인정보보호의 문제가 대두될 것으로 예상된다.

 

투명 디스플레이, 홍채 인식, 미래항공모빌리티 등 영화 속 기술이 20년 뒤 현재는 당연한 현실이 되었다. 

 

2002년 영화 속 멋진 신세계, 이제는 당연한 현실!

 

범죄예측 외에도 영화에서 등장한(원작에서는 기술적 내용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멋진 미래기술들의 상당수가 이미 개발되었거나 개발을 목전에 두고 있다. 투명 디스플레이, 제스처 인식, 뇌스캔, 홍채 인식, 미래항공모빌리티(Advanced Air Mobility, AAM) 등. 이 영화가 2002년에 개봉한 것을 생각해보면 스티븐 스필버그는 진짜 예지능력자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책은 60페이지 가량의 단편이라 사실 'SF대작'이 아닌데다, 첨단기술들을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예지능력자들과 이들의 능력을 통해 범죄를 미리 예방하는 사회라는 아이디어를 제외하고 상당히 많은 부분들이 영화를 위해 추가되었다. 영화 줄거리의 핵심인 ‘앤 라이블리’ 살인사건, 앤더튼이 예언의 대상이 되게 된 계기는 모두 영화에서 만들어낸 것이고 결말도 많이 다르다.  

 

작품에서 가장 큰 의미를 갖고, 제목 그 자체이기도 한 ‘소수보고’는 어떠한가? 원작과 영화의 가장 큰 차이도 ‘소수보고’의 의미에서 생겨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핵심은 다음 문장으로 함축된다.

 

“다수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논리적 필연에 의해 그에 상응하는 소수의 존재를 암시한다.”

 

원작에서는 예지능력자 ‘도나’, ‘제리’, ‘마이크’의 세 예지가 서로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예견된 미래는 그 예측을 알게된 의지를 가진 주체에 의해 바뀌고, 그 바뀐 미래는 또 다시 다른 예측으로 이어진다. 즉 원작의 소수보고는 가능성의 우주에서 여러 시간의 흐름이 존재함을 나타낸다. “만약 단 하나의 시간 흐름만이 존재한다면 예지 능력자의 보고가 아무런 가치도 없을 것입니다. 정보를 소유한다고 해도 미래를 바꿀 가능성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인식하는 존재가 ‘자유롭진 않지만 속박당하지도 않은’ 상태로, 인식된 하나의 미래를 그대로 실현하는, 지난 칼럼에서 다루었던 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와의 결정적 차이가 여기에 있다!

 

영화에서는 이러한 시간의 줄기에 대한 언급없이 소수보고의 존재는 예지능력자들의 예지결과(다수보고)가 ‘틀릴 수 있다’는 점, 그리하여 인간의 자유의지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점을 상징하는 장치 역할을 한다. 즉 원작에서는 소수보고를 비롯한 모든 예언이 ‘맞지만’ 각기 다른 시간의 흐름을 예언한 것임에 반해 영화에서는 인간의 자유의지로 인해 예언이 아예 ‘틀릴’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를 강조하기 위한 변주로, 원작에서는 소수보고의 존재를(보다 정확히는 세 예지능력자들의 세 예지들로부터 어떻게 하나의 결론을 내리는지를) 초반에 대대적으로 설명을 해주는 반면, 영화에서는 소수보고의 존재가 팀장인 앤더튼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굉장한 비밀로, 후반부에 가서야 등장한다.

 

같은 미래에서 필립 K. 딕은 무한한 우주의 가능성을 본 반면, 스티븐 스필버그는 인간 의지의 위대함을 보았다. 여러분은 무엇을 보았는가? 그것이 우리가 찾아야할 ‘마이너리티 리포트’일 것이다.

 


최기욱 변호사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플랜트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엔지니어 및 리스크매니저로 근무했다. 이후 변호사가 되어 문과와 이과, 이론과 실무를 넘나드는 배경을 바탕으로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기업의 사내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작가, 강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비바! 로스쿨>(박영사. 2022), <엘리트문과를 위한 과학상식>(박영사. 2022), <잘 나가는 이공계 직장인들을 위한 법률계약 상식>(박영사. 2023)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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