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꿈과 사랑, 그리고 신비!
드디어, 칼 세이건의 <콘택트>

엔지니어 출신 변호사의 'SF대작 읽기'

※이 글을 쓴 최기욱 변호사는 SF 열혈팬이다. 우주시대의 씨앗을 일찌감치 뿌려온 SF대작들을 영상 리메이크 작품과 비교해 소개함으로써 우주문화의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이 코너를 마련했다. 이 글은 코스모스 타임즈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다. <편집자>


 

“인간이 우주의 규모를 깨닫고 은하계 하나만 해도 자신의 상상 범위를 초월할 정도로 광대하다는 점을 알게 된 바로 그 순간부터 그 후손들은 별을 보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우주의 광활함과 그 신비는 언제나 우리를 겸허하게 만든다. 우리는 아주 작고 창백한 푸른 점 안의 존재들일 뿐이다. 우주와 같은, 알고싶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미지의 신비는 그 끝에서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근원적 욕구를 자극한다. 그 방법은 종교일수도, 과학일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모두 같은 길을 걷고있다는 것. 의미없는 반목보다는 포용과 이해의 자세로, 겸허함을 가지고 신비를 탐구하고 진리를 좇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인가? 그러한 화합을 꿈꾼 위대한 과학자가 있다. 과학과 종교를 아우르며,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사랑의 힘을 역설한 칼 세이건의 걸작 <콘택트>를 읽을 때다. 많은 이들에게 조디 포스터와 매튜 매커너히가 등장한 1997년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동명의 영화 <콘택트>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외계로부터 보내져 오는 전파를 들으려 노력하는 엘리 애로웨이. / IMDB

 

외계생명체를 찾는 전파천문학자가 만난 '외계'

 

어린 시절부터 수학과 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엘리 애로웨이. 그녀는 전파천문학자로 성장한다. 촉망받는 연구자였지만 그녀가 연구 주제로 선택한 것은 외계의 지적생명체를 찾는 일, 즉 SETI(S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 외계지적생명체탐사) 프로젝트였다. 푸에르토리코의 거대한 아레시보 관측소에서(안타깝게도 아레시보 전파망원경은 2020년 붕괴되어 버렸다) 시작된 연구는 (가상의) 아르고스 연구소에서 계속되었다. 은사였던 드럼린 교수는 가망없는 일에 재능을 낭비한다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엘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들을 능력이 있는데도 의지가 없어 듣지 못한다면 어떻게 우리 문명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러던 어느 날, 엘리는 직녀성(베가)으로부터 온 신호를 수신하게 된다. 신호를 분석해보았다. 처음에는 소수가 등장했다. 지적생명체가 보낸 신호임이 분명하다. 전세계가 난리가 났다. 그 다음으로는 히틀러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개막식 방송의 영상이었다. 독일의 기술력을 자랑하기 위해 지구에서 송신되는 텔레비전 신호로는 처음으로 우주에서 수신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던 바로 그 방송. 이것은 그들이 우리의 존재를 인지하고 지켜보고 있다는 확증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호 속에 숨겨진 것은 정체불명의 거대한 기계에 대한 설계도였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세 개의 커다란 고리에 둘러싸인 12면체로, 안에는 5명의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있는 기계. 용도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적어도 운송수단임에는 분명해보인다. 이는 외계에서 보낸 초대장이나 마찬가지였고, 전세계는 힘을 모아 이 기계를 만들기 시작한다. 하나되어.

 

흥미진진하다. 외계지적생명체의 추적 과정과 그 발견에 대한 큰 줄기 외에도 엘리 애로웨이라는 인물의 성장과정, 외계생명체의 존재가 확인되자 벌어지는 각국의 정치적 이권다툼, 종교계와 과학계의 의견충돌, 인류를 대표할 5명의 인물을 어떻게 선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 그리고 무엇보다 우주의 신비 그 자체까지 각각 책 한 권씩을 써도 모자랄 심오한 주제들이 칼 세이건의 담담하면서도 따뜻한 문체에 실려 아름답게 넘실거린다.

 

특히 재미있는 부분은 엘리와 종교지도자들과의 대담 장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진리가 있다고 믿는 자들과 과학적 회의주의의 자세를 취하는 자들의 견해 차이가 두드러진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신비’로 여겨지는 대상을 탐구하며 진리를 추구한다는 공동의 목표가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칼 세이건은 그 진리는 우리가 합의점을 찾아가며 만들어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라는 점, 그것이 한없이 부족한 우리 인류가 진리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역설한다.

 

“저는 받아들여진 진리 같은 것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혹은 회의론자들이 검증 작업을 하는 와중에 바로 그런 때 진리가 나타나는 겁니다. 이것은 과학사 전체의 경험에서 얻어진 생각입니다. 완벽한 접근법은 아니지만 효과가 있는 유일한 접근법이지요”

 

당연히 과학도 완벽하지 않다. 특히나 적어도 현재의 기술로는 증명가능성이 희박할 수밖에 없는 우주과학분야를 비롯한 과학의 최전선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전히 신비를 좇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과학 역시 ‘인간’의 행위로서 지극히 인간적인 제약을 받을 수 받게 없다. 칼 세이건은 종교지도자 팔머 조스의 입을 빌어 질문한다. “과학자가 악을 행하지 않도록 막아주는 과학의 안전장치는 무엇이오?”

 

수많은 과학이론들이 등장하는 영화 속 부분들을 믿을 수 있어 편하게 관람할 수 있다. / IMDB

 

칼 세이건의 원작이라 믿고 읽을 수 있는 과학지식

 

원작에서 엘리가 과학자로서 종교적 경이로움에 가까운 것을 느끼는 장면이 많이 삽입되긴 했지만(특히 우주와 초월수의 신비를 보며) 적어도 엘리와 종교인들과의 대화장면들에서는 과학과 종교의 견해대립이 두드러진다. 격한 말싸움에 손에 땀을 쥐게할 정도로 극적으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이러한 논쟁을 대거 삭제하고 엘리와 팔머 조스를 연인관계로 등장시키며 둘 간의 화합을 강조했다.

 

영화 마지막 장면, 아무도 그녀가 외계인과 접촉하고 왔다는 사실을 믿어주지 않는 답답한 엘리의 청문회가 끝나고 팔머 조스는 엘리와 함께 계단을 내려간다. 그 와중에 팔머 조스는 기자들에게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대답한다. “저는 애로웨이 박사와 다른 서약을 따르지만 목표는 같습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것. 저는 그녀를 믿습니다.”

 

이야기만 흥미로운 것이 아니고 배울 점도 넘치는 작품이다. 두 권으로 번역된 방대한 분량 내내 천체물리학, 전자공학, 수학, 기계공학, 재료공학 등 수많은 지식들이 쏟아지며 독자들을 즐겁게한다.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은 위대한 과학자인 칼 세이건의 작품이기에 이야기를 즐기면서도 정확한 과학지식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많은 SF 작품들, 특히 과학과 공학적 서술이 많은 소위 말하는 ‘하드SF’ 작품들을 읽을 때면 어디가 현실의 과학이고 어디가 상상의 영역인지, 그리고 어떤 부분이 설정 오류인지를 파악하기가 어려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전문과학자인 칼 세이건이 썼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온갖 과학적 서술들을 안심하고 믿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안정감이 느껴진다. 게다가 과학자가 아니라면 도저히 쓸 수 없는 문장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엘리는 증폭기 속에서 들뜬 상태가 된 작은 크롬 원자들이 약한 전파 신호를 증폭시키는 그 모습이 좋았다.”).

 

원작에서는 5인승 우주선이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는 1인승으로 단순화했다. / IMDB

 

원작소설 vs 영화, 달라진 대목들

 

영화에서는 방대한 서사를 압축하기 위해 여러 인물과 인간관계를 대폭 축소시켰다. 대표적으로 대통령의 과학자문이자 원작 속에서의 엘리의 연인이었던 데어 헤르라는 캐릭터를 없애고, 엘리의 은사인 드럼린 교수를 과학자문으로 등장시켰다. 한편 비록 엘리가 SETI프로젝트에 몰두하는 것을 반대하긴 했지만 폭발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도 엘리를 밀어 그녀를 살리는 등 입체적 면모를 지닌 드럼린 교수를 오직 엘리를 향한 시기와 질투 밖에 없는 인물로 단순화했다. 그리고 원작에 등장하는 많은 종교인들을 팔머 조스라는 한 인물에 투영하고, 그에게 엘리의 연인 역할까지 맡겼다.

 

원작에서는 외계인들의 기계가 5인승이기에 각 국에서 인류를 대표할 사람들을 뽑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엘리(미국), 베게이(러시아), 수하바티(인도), 에다(나이지리아), 시 챠오무(중국)가 최종적으로 선발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기계가 1인승으로 스케일이 매우 줄어들어 작품 마지막에서의 ‘아무도 자신이 외계생명체와 만나고 왔다는 사실을 믿어주지 않는 고립감’이 극대화된다.

 

그리고 영화에서는 기계가 ‘순식간에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작동이 종료되어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는 설정을 강화했는데, 원작에서 기계는 제자리에서 자그마치 20분 동안 작동한다! 또 원작에서는 기계가 아인슈타인-로젠 다리, 즉 웜홀을 통해 도착한 곳은 수없이 많은 크고작은 도킹 지점이 있는 거대한 ‘우주의 중앙역’인 것으로 나타나지만 영화에서는 스케일의 한계 때문인지 표현되지 않고 바로 직녀성에 도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아쉬운 점은 초월수, 특히 파이(π)에 대한 내용. 이는 원작에서 어린 시절 엘리의 탐구정신과 후반부에서 우주 속에 숨겨진 신비를 드러내는 데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영화에서는 모두 삭제되었다.

 

영화와 원작 간의 차이를 이야기 한 김에 충격적인 사실 한 가지. “우주에 우리만 있다면, 엄청난 공간의 낭비일 것 같구나(If it is just us, it seems like an awful waste of space)”. 칼 세이건의 가장 유명한 말이자, <콘택트> 최고의 명대사이다. 영화에서 세 번씩이나 등장하는 이 명대사는 정작 소설 원작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외계인 앞에서 일면식 없는 인간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것, 인류의 장점은 음악, 사랑, 꿈 같은 것들이다. / IMDB

 

음악, 사랑, 꿈... 인류를 하나로 묶는 가치들

 

영화와 소설 원작 모두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광활한 우주 앞에 선 인간들이 해묵은 감정과 불합리한 견해 차이를 버리고 국가를 초월한 전지구적 사상을 갖게되는 장면들이다. 하나의 인류라는 기치 아래. 지구는 하나의 세상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이제서야 모두가 깨닫는 것이다. 그러나, 꼭 외계생명체가 등장하는 상황이 발생해야만 우리가 하나될 수 있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책 속에서 베가인들이 지구 문명의 장점으로 꼽은 것은 음악, 사랑, 꿈이었다. 이 인류의 장점에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를 하나되게 만드는 것. 이러한 추상적 관념의 공유를 통해 일면식 없는 동료 인간들과 하나될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가장 강하게 만들어주는 힘이다. 우리는 어쩌면 생각보다 중요한 것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우주 시대가 열린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른 사람들의 창조 신화를 밝히는 데는 열심이었지만 자신의 탄생을 둘러싼 거짓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평생 우주를 연구했지만 그 안의 가장 분명한 메시지는 놓쳐버린 셈이었다. 우리와 같은 자그마한 생명체는 오로지 사랑을 통해서만 광대함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 말이다.”

 

두말할 필요가 없는, 많은 이들이 최고의 SF로 꼽는 작품이다. 영화를 보셨다면 꼭 원작을 읽으며 그 아름다운 신비를 온전히 느껴보시길 권한다.

 

P.S. 1. 최근 드라마화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류츠신의 <삼체>가 <콘택트>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라는 사실은 SF 팬들이라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삼체>는 <콘택트>로부터 외계와의 교신이라는 아이디어만 얻은 것이 아닌 것 같다. <콘택트>에서의 엘리의 독백이다.

 “세 개의 태양을 가진 체계는 대개 어느 한 태양에 가깝게 붙은 궤도를 가지고 있었다. 좀더 재미있고 기계적으로도 아름다운 궤도는 두 개의 태양을 둘러싸고 8자 모양으로 도는 것이 아닐까. 하늘에 태양이 세 개나 떠 있는 세상에서 산다면 어떨까? 아마 뉴멕시코보다도 더 뜨거울 거야…”

 

P.S. 2. 영화에서 엘리의 대사를 통해 은하계에서 지금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통신 가능한 문명의 수를 예측하는 ‘드레이크 방정식’의 개념이 대략적으로 등장하는데… 각본을 칼 세이건이 검수하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칼 세이건은 영화 개봉 전 세상을 떠났고 영화 마지막에는 ‘칼을 위하여’라는 추모 자막이 삽입되었다).

“우리 은하계에만 4000억 개의 별들이 있는거 아세요? 그 중 100만 개 중 하나에 행성이 있다면, 그리고 그 중 100만 개 중 하나에 생명체가 있다면, 그 100만 개 중 하나에 지적 생명체가 있다면 몇백만 개의 문명이 존재할 거예요.” 그러면 수백만이 아니라 0.0000004개의 문명만이 존재한다! 엄청난 공간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최기욱 변호사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플랜트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엔지니어 및 리스크매니저로 근무했다. 이후 변호사가 되어 문과와 이과, 이론과 실무를 넘나드는 배경을 바탕으로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기업의 사내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작가, 강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비바! 로스쿨>(박영사. 2022), <엘리트문과를 위한 과학상식>(박영사. 2022), <잘 나가는 이공계 직장인들을 위한 법률계약 상식>(박영사. 2023)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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