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온다
외계세균과 접촉할 때 생길 일!

엔지니어 출신 변호사의 'SF대작 읽기'= 마이클 크라이튼 <안드로메다 스트레인>

※이 글을 쓴 최기욱 변호사는 SF 열혈팬이다. 우주시대의 씨앗을 일찌감치 뿌려온 SF대작들을 영상 리메이크 작품과 비교해 소개함으로써 우주문화의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 이 코너를 마련했다. 이 글은 코스모스 타임즈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다. <편집자>


 

지난 6월 25일, 중국의 '창어 6호'가 달 뒷면의 토양을 채취하여 지구로 성공적으로 귀환했다(코스모스 타임즈 기사 https://www.cosmostimes.net/news/article.html?no=24260). 이 뉴스를 듣고 SF팬이라면 목 뒤의 솜털들이 바짝 솟구쳐오르는 소름을 경험했을 것이다. 외계물질을 국자로 떠서 가져오고, 이로인해 인류의 생물학적 위기가 초래된다는 유명한 이야기를 알고있기 때문이다. 바로 <쥬라기 공원>으로 유명한 천재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의 출세작이자 ‘테크노 스릴러’ 장르의 효시로 불리는 <안드로메다 스트레인>이다. 1969년 발표된 이 베스트셀러는 1971년 영화화되어 SF 영화의 클래식 반열에 올랐고, 2008년 TV 시리즈로도 제작된 바 있다.

 

머릿속에서 외계생명체를 떠올려보자. 일단 보기좋게 생기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오롯이 지구환경에 맞추어 진화한 우리의 미적감각에 잘 들어맞는 외계생물이 있으면 그게 더 놀랄 일이다. 이들이 우리에게 우호적인가, 적대적인가? 이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교감을 하든 전쟁을 하든 우리가 외계생명체를 떠올릴 때 당연한 전제로 깔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외계생명체가 인간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는 아마도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접해온 영화 등의 매체의 영향일 것이다.

 

위성이 한 마을에 떨어졌는데, 그것에 실려있던 치명적인 외계세균이 지상에 노출됐다.  

 

우리가 처음 만날 외계생명체, '세균'

 

우리 상상 속의 외계생명체는 우리보다 조금 작거나 클 수는 있지만 일단 인간과 물리적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는 된다. 하지만 과연 그럴 것인가? 지구기준으로 보았을 때 인간은 굉장히 큰 생물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의 절대다수는 단순히 인간보다 작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작다. 셀수도 없이 많은 종의 세균과 곤충들에 비하면 영장류는 숫자에서 초라하기 그지없다. 종의 수만해도 그런데 개체수까지 따지면 비교도 안된다. 그렇다면 지구 밖은 다를까? 진화의 역사를 생각하면 지구 밖의 생명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우리의 첫 미지와의 조우는 아주 작은 생명체와 이루어질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리고 이러한 접촉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 하버드 의대 출신 마이클 크라이튼은 논리적으로 자명한 이러한 사실을 파고들어 이 걸작을 탄생시켰다. “이러한 고찰을 바탕으로 나는 인류의 외계 생물과의 최초의 상호작용이 지구의 세균 혹은 바이러스와 동일한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와 유사한 생물과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접촉의 결과는 지구의 모든 세균의 3%가 인간에게 유해한 효과를 미친다는 사실로 유추해볼 때 절대로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

 

소설의 핵심 아이디어는 이렇게 외계생명체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깨는 날카로운 지적에서 시작된다.

 

미국의 아주 작은 마을 피드먼트. 인공위성이 하나 이 마을에 떨어졌고, 이 위성을 수거하러 파견된 군인들은 놀라운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시체가 즐비한 마을. 그리고 곧 군인들도 원인모를 최후를 맞는다. 해당 인공위성은 우주에서 미생물을 ‘떠와서’ 생물학 무기 개발에 이용하고자 하는 비밀 프로젝트 'SCOOP(국자)'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

 

이를 해결하기 윈한 '와일드파이어(Wildfire. 국내판에서는 맞불 또는 번개탄으로 번역되었다) 계획'이 실행되고 5명의 연구진이 소환된다. 이는 미국의 우주선이 지구로 귀환했을 때, 그것과 함께 묻어 들어올 위험이 있는 생물의 조사를 위한 계획이었다. 보호복을 입고 마을로 간 연구진은 마을 사람들이 인공위성의 내용물을 열어보았다는 것, 그리고 그 직후 모두 죽음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온 몸의 혈액이 응고된 끔찍한 모습으로.

 

외계세균에 노출된 마을, 생존자는 어린아이 하나와 궤양을 앓는 노인, 단 2명 뿐이다. 

 

위성이 떨어졌다, 생존자는 단 두 명!

 

마을의 생존자는 오직 두 명이었다. 시도때도없이 울어제끼는 어린아이와 궤양을 앓고있어 아스피린을 달고사는 노인. 전혀 공통점이 없어보인다. 하지만 이 둘의 공통점이 바로 그들이 살아남은 이유일 것이다. 사막 한 가운데 위치한 와일드파이어의 비밀 연구소에서 과학자들은 ‘안드로메다’로 명명된 이 미확인 물질을 이겨낼 방법을 찾기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항상 최신의 과학을 아주 현실적으로, 치밀하게 사용하는 ‘마이클 크라이튼다움’이 잘 드러난 작품이다. 미생물학과 병리학, 실제 세계의 안전 절차와 유사한 생물학적 격리 및 연구시설, 당시 기술 상황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로 첨단인 컴퓨터과학과 자동화 기술이 등장하며 독자들의 지적쾌감을 자극한다. 거기에 우주 탐사와 외계로부터의 오염의 잠재적 위험에 대한 기술적 통찰과 대중 인식 제고까지. 우리를 마이클 크라이튼에게 열광케했던 그의 작품들의 모든 특성이 이미 이 <안드로메다 스트레인>에 담겨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품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와일드파이어의 최첨단 연구실의 모습이다. 5단계의 철저한 격리와 살균 절차, 병원체가 외부로 유출되지 못하도록 설계된 음압실, 인간의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한 자동화 시스템 등 다양한 안전 장치와 절차의 모습이 등장한다. 컴퓨터 장비를 제외하면 작품에 묘사된 시설의 모습이 현재의 독자들에게도 첨단의 것으로 느껴질 정도. 1969년의 작품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한국 질병청의 한 논문에 예시되어 있는 최고등급 BSL-4 등급의 연구소. 거의 같은 수준의 사실적 연구소가 소설에 등장한다. 

 

지구와 외계의 세균에 대한 과학적 그럴듯함

 

참고로 현실 세계에서 감염성 물질을 취급하는 연구는 ‘생물안전단계(BioSafety Level)’라는 구분법이 사용되고 최고 등급은 BSL-4(혹은 BL4)로 가장 높은 수준의 생물 안전을 요구한다. 그리고 <안드로메다 스트레인>에서 묘사된 연구소의 모습은 음압 유지와 다중 격리구역, 전체 몸 보호복과 이중 장갑, 보안과 특수소독 시스템, 자체 폐기시스템 등 실제 BSL-4 연구소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의 경우 질병관리청에 BSL-4 연구시설이 있다(관심이 생기신 분들은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서 '생물안전 4등급 연구시설의 특징'에 대한 공개된 논문을 찾아보시길!).

 

또 작중에서 안드로메다 스트레인(제목에 등장한 Strain은 균주, 즉 한 개의 세포에서 유래한 동질의 유전적 특징을 갖는 개체들의 집합을 말한다. 일반 시청자에게 익숙지 않은 단어라 그런지, 국내에서 영화의 제목은 ‘안드로메다의 위기’로 번안되었다)의 특성 묘사도 굉장히 재치 넘친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이 작품을 통해 지구의 생명체와 완전히 다른 방식의 생물의 특성을 제안했다. 단백질이나 핵산이 존재하지 않으며 육각의 결정형 구조를 가지고 있고, 화학에너지를 직접 변환할 수 있기에 먹거나 배출을 하지 않으며, 이후에는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등 환경에 따라 빠르게 적응하는 특성을 가졌다. 특히 극중에서 계속 진화를 거듭하는 안드로메다와 그로 인한 결말은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말할 수는 없지만) 과학적으로 아주 타당한 통찰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은 세균의 바다 한 가운데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누구나 그것을 완전히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곁의 작은 친구들을 다시금 돌아볼 시간이다.

 

2008년 제작된 TV 드라마 <안드로메다 스트레인>.

 

정부 보고서 양식의 차용, 생생한 현실감

 

작품의 또다른 특성으로는 정부의 공식 보고서와 같은 형식(작품은 시작부터 “안드로메다 보고서. 이 서류는 극비 문서이다”로 시작한다!), 컴퓨터로 디스플레이된 문서 형식 등을 활용하여 작품의 내용에 현실성을 더했다는 점. 이러한 서술방식이 실제 과학적 사실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더불어 이 작품을 일반적인 SF가 아닌 ‘테크노 스릴러’라는 새로운 하위장르로 불리게 하는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러한 몰입감을 높이기 위한 서술 방식은 로버트 와이즈 감독의 영화(1971)에서도 잘 반영되었다. 영화 중간 중간에 정부 보고서 형식과 컴퓨터 화면을 통해 극 진행과 관련된 주요 사실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해당 영화는 캐릭터의 성별변화를 제외하고는 원작의 내용을 고지식하다 싶을 정도로 충실하게 재현했다. 매체의 특성상 병원체와 연구소에 대한 상세한 과학적 설명을 생략하거나 단순화했고, 시각적 스펙터클에 보다 신경을 썼으며 긴장감 넘치는 연출이 다소 추가되었을 뿐이다. 특히 당시로는 이색적이었던 화면분할 연출이 유명하다(예를들어 연구진이 폐허가 된 피드먼트 마을의 집 안을 창문을 통해 들여다보는 모습과, 창문을 통해 보여지는 집 안쪽의 모습을 좌우로 나누어 한 화면에 보여주는 등).

 

반면 미카엘 살로몬 감독의 2008년 TV 시리즈의 경우는 원작과 상당히 다르다. 시간적 여유가 생긴 탓인지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원작에는 없는 정치적인 음모와 갈등에 대한 내용이 상당히 추가되었으며, 정부의 비밀을 파헤치는 기자를 등장시키는가 하면, 연구진들의 인적구성도 상당히 바뀌었다. 게다가 원작과 영화에서는 피드먼트 마을에 핵미사일을 떨어뜨릴 예정이었으나 안드로메다가 에너지를 직접 변환시키기에 폭발이 일어나면 오히려 더 활발히 퍼져나갈 것이라는 점을 발견한 과학자들이 대통령을 뜯어말려 계획을 멈추지만, TV 시리즈에서는 거침없이 핵이 폭발한다! 스펙터클 측면에서는 2008년 작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다.

 

우주시대가 다시금 시작되었다. 환호할 일이다. 하지만 주의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이클 크라이튼은 작중에서 우주시대에 반드시 고려해야 할, 질병을 일으키는 새로운 세균의 감염 경로로 세 가지를 꼽았다. 직접 우주에서 온 경우, 지구에서 탄생한 세균이 대기 상층부로 올라가 진화한 경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해했던 지구의 세균이 불충분한 멸균상태의 우주선에 함께 탑승하여 우주환경에 노출되어 유독한 형태로 변이되는 경우. 외계의 생명체를 찾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희망이 눈 앞에 아른거리는 지금,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중요한 화두를 던져주는 이 작품을 다시금 꺼내본다. 인류의 진정한 안녕을 위해.

 

※덤. 최근 다시금 큰 인기를 끌고 있는 SF 걸작 <삼체>에서는 외계종족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위해 인간의 ‘뇌’만을 보내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에 대한 내용이 가상의 '메신저 이론'이라는 형태로 이미 <안드로메다 스트레인>에 등장한 바 있다. 이 가상의 이론은 먼 우주에 정보를 보내는 가장 값싼 방법은 대량으로 배양할 수 있는 생물을 ‘메시지를 운반하는 생물(메신저)’로 이용하는 것이라는 이론이다. 적당한 환경 하에서 완전한 뇌로 재성장할 수 있는 뇌세포를 송출하여, 거기서 접촉한 문명과 정보를 교류할 수 있게할 수 있다는 예시와 함께 서술되어 있다!

 


최기욱 변호사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후 플랜트엔지니어링 업계에서 엔지니어 및 리스크매니저로 근무했다. 이후 변호사가 되어 문과와 이과, 이론과 실무를 넘나드는 배경을 바탕으로 활발한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기업의 사내변호사로 재직 중이며 작가, 강사,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비바! 로스쿨>(박영사. 2022), <엘리트문과를 위한 과학상식>(박영사. 2022), <잘 나가는 이공계 직장인들을 위한 법률계약 상식>(박영사. 2023)을 집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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